이창호 9단 나이·프로필·학력·고향·부인 이도윤 총정리|세계 최초 2000승과 2500승 도전

이창호 9단은 2026년 10월 26일 세계 프로바둑 최초로 통산 2,000승을 달성한 한국 바둑의 전설입니다. 1975년 7월 29일 전북 전주에서 태어난 그는 올해 만 51세이며, 충암초·중·고를 졸업하고 11세에 프로에 입단했습니다. 부인은 바둑 전문기자 출신 이도윤 씨로 2010년 10월 결혼했습니다. 11월 3일 기념식에서는 다음 목표로 2,500승을 조심스럽게 언급했습니다.
검색창에서 '이창호 9단 나이', '이창호 학력 고향', '이창호 부인', '2000승 기록'을 각각 찾아보게 되지만 사실 이 정보는 하나의 바둑 인생으로 연결됩니다. 이번 글에서는 최신 기록의 날짜부터 가족·학교·스승 조훈현·세계대회 우승·신진서 평가·은퇴 계획까지 공식 자료와 주요 보도에서 확인되는 내용으로 정리합니다.

- 생년월일: 1975년 7월 29일, 만 51세(2026.11.3 기준)
- 고향·학력: 전북 전주 출생, 충암초·중·고 졸업
- 가족: 부인 이도윤, 딸 둘
- 입단: 1986년 8월, 조훈현 9단 문하
- 2000승 달성: 2026년 10월 26일, 최명훈 9단 상대 207수 흑 불계승
- 기념식: 2026년 11월 3일 서울 한국기원
- 대표 성적: 메이저 세계대회 17회 우승, 통산 142회 우승(한국기원 발표)
- 향후 희망: 2,500승 도전을 생각 중이며 공식 은퇴 시점은 미정
1. 이창호 9단 세계 최초 통산 2000승, 언제 기록했나

이창호 9단은 2026년 10월 26일 세계 프로바둑 사상 최초로 통산 2,000승을 기록했다. 1986년 8월 프로에 입단한 뒤 40년 2개월 만에 세운 기록이다. 11월 3일 열린 기념식 때문에 이날 승수를 채운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기록 달성일과 축하 행사 날짜는 다르다.
2000번째 승리는 전북 완주군 삼례문화예술촌에서 치러진 2026 쏘팔코사놀 레전드리그 11라운드에서 나왔다. 이창호는 같은 1975년생인 최명훈 9단을 상대로 흑을 잡고 207수 만에 불계승을 거뒀다. 상대가 형세를 인정하고 돌을 거두면서 대국이 끝났다는 뜻이다.
2000승 달성 순간의 한국기원 공식 전적은 2,831전 2,000승 1무 830패, 승률 70.67%였다. 승수에 초점을 맞추기 쉽지만 승률과 대국 수를 함께 보면 기록의 무게가 더 또렷해진다. 전성기에 쌓은 승리뿐 아니라 정상에서 내려온 이후에도 계속 대국을 치른 시간이 모두 들어 있기 때문이다.
| 구분 | 공식 확인 내용 |
|---|---|
| 대기록 달성 | 2026년 10월 26일 |
| 대회 | 2026 쏘팔코사놀 레전드리그 11라운드 |
| 상대 기사 | 최명훈 9단 |
| 승리 방식 | 207수 흑 불계승 |
| 당시 통산 전적 | 2,831전 2,000승 1무 830패 |
과거 일부 자료에 등장하는 '2,000대국'은 2,000번 경기를 치렀다는 의미로, 이번의 '2,000승'과 전혀 다른 기록이다. 검색할 때 두 표현을 구분해야 이창호의 기록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2. 2026년 11월 3일 2000승 기념식 현장과 소감

한국기원은 2026년 11월 3일 오후 서울 성동구 마장로의 한국기원에서 이창호 9단의 통산 2,000승 기념행사를 열었다. 양재호 한국기원 사무총장, 조한승 프로기사협회장, 홍민표 국가대표 감독 등 바둑계 관계자들이 참석해 축하했다.
행사에서는 이창호의 주요 약력과 대표적인 명승부를 돌아보고, 후배들의 축하 메시지를 상영했다. 양재호 사무총장은 기념패를 전달했으며 김은지 9단은 꽃다발을 전했다. 조용한 성격으로 알려진 그가 공식 석상에서 자신의 긴 바둑 인생을 되돌아보는 자리가 됐다.
이창호는 대기록의 의미에 대해 좋아하는 바둑을 평생 할 수 있었던 사실 자체가 행복하다고 이야기했다. 또 2000승을 자신에게 주는 상처럼 느낀다는 소감을 밝혔다. 이는 승수의 숫자뿐 아니라 오랜 시간 같은 길을 걸어온 과정에 의미를 둔 발언이다.
전성기와 현재 중 어느 시기가 더 행복한가라는 질문에는 좋은 성적을 낼 때도 심리적 부담이 커 마음껏 즐기지 못했고, 지금은 더 편안한 마음으로 바둑을 두고 있어 만족한다는 취지로 답했다. 기념식은 단순한 은퇴 회고전이 아니라 여전히 현역인 선수의 현재를 확인하는 행사였다.
3. 이창호 9단 나이·생년월일·고향·프로필

이창호 9단은 1975년 7월 29일 태어났으며 2026년 11월 3일 기준 만 51세다. 출생지는 전북 전주로, 현재 행정구역 표기상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다. 이름의 한자는 李昌鎬이고 영문 표기는 Lee Chang-ho로 쓰인다.
소속은 한국기원, 단급은 프로 9단이다. 1986년 8월 11세의 나이로 입단한 이후 지금까지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기사 소개에서 '돌부처' '국보'라는 표현을 함께 보는 이유는 그의 침착한 승부 태도와 한국 바둑 전성기에 남긴 압도적인 기록 때문이다.
| 항목 | 이창호 9단 프로필 |
|---|---|
| 이름 | 이창호(李昌鎬) |
| 출생 | 1975년 7월 29일 |
| 나이 | 만 51세(2026.11.3 기준) |
| 고향 | 전북 전주 |
| 직업·소속 | 프로 바둑기사·한국기원 |
| 단급 | 프로 9단 |
| 프로 입단 | 1986년 8월 |
| 스승 | 조훈현 9단 |
| 배우자 | 이도윤 |
온라인에서 나이를 다르게 표시하는 이유는 과거 기사 속 당시 나이를 그대로 가져오거나 연 나이와 만 나이를 섞기 때문이다. 기준일을 현재로 고정하면 계산은 간단하다. 2026년에 이미 7월 생일이 지났으므로 만 51세가 맞다.
4. 이창호 9단 학력, 전주에서 충암초·중·고까지

이창호의 학력을 확인할 때는 프로기사로 매우 어린 나이에 활동을 시작했다는 배경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전주교육대학교 부설초등학교에 입학했다가 서울의 이화여자대학교 부속초등학교로 옮겼고, 이후 바둑 수련에 적합한 환경을 찾아 충암초등학교로 전학했다.
2006년 동아일보에 실린 본인 인터뷰에 따르면 충암초등학교 6학년 때 바둑 특기생이 됐고, 충암초등학교·충암중학교·충암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 학력은 이창호가 자신의 학창 시절을 직접 설명한 자료로 확인된다.
학교생활은 일반적인 학생과는 조금 달랐다. 국내외 바둑대회와 연구 시간을 확보해야 했기 때문에 특히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에는 학업 일정에서 배려받았다고 회고했다. 덕분에 학창 시절부터 전문기사로서 대국과 연구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창호 9단의 최종 학력을 대학 졸업으로 단정하는 인터넷 글도 있지만, 본인이 공개 인터뷰에서 밝힌 학력은 충암고등학교 졸업이다. 학력을 찾는 독자라면 충암초·중·고 졸업이라는 확인된 정보에 초점을 두는 것이 정확하다.
5. 이창호 부인 이도윤 누구? 2010년 결혼한 바둑기자

이창호 9단의 부인은 이도윤 씨다. 두 사람은 2010년 10월 28일 결혼했으며, 당시 이도윤 씨는 바둑 전문 매체 사이버오로에서 기자로 일했던 인물로 소개됐다. 단순히 유명 기사를 취재한 기자와 선수의 인연을 넘어, 바둑계에서 서로의 일을 이해할 수 있었던 커플이라는 점이 주목받았다.
2010년 보도에 따르면 이도윤 씨는 한국기원 연구생 출신으로 명지대학교 바둑학과를 졸업했다. 두 사람은 2008년 5월 인터뷰를 계기로 알게 됐고, 같은 해 가을 무렵부터 교제를 시작한 것으로 보도됐다. 2010년 6월 함께 결혼 발표 기자회견에 나서면서 관계를 공개했다.
당시 보도에서는 이도윤 씨를 이창호보다 11살 어린 배우자로 소개했다. 나이 차이는 두 사람이 실제로 결혼을 발표했던 시점의 기사에 근거한 정보다. 다만 현재 배우자의 직업과 사생활을 2010년 당시 직업 그대로 단정해 적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 구분 | 확인된 내용 |
|---|---|
| 부인 | 이도윤 씨 |
| 결혼 | 2010년 10월 28일 |
| 만남 | 2008년 5월 취재 계기 |
| 당시 경력 | 바둑 전문 매체 기자 |
| 학력 | 명지대학교 바둑학과 졸업 |
| 나이 차이 | 당시 보도상 11살 |
당시 이창호는 배우자의 배려심 덕분에 마음이 편해진다는 취지로 이야기했다. 두 사람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는 공개된 기자회견과 결혼 기사에서 확인된 내용에 집중하고, 사적인 재산이나 일상에 대한 근거 없는 추측은 제외하는 것이 좋다.
6. 이창호 자녀와 가족, 딸 둘을 언급한 이유

이창호 9단은 2026년 11월 3일 열린 2000승 기념식에서 사춘기 딸 두 명이 있다는 질문을 받았다. 가족이 대기록을 세운 것에 어떤 반응을 보였느냐는 질문에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다는 뜻으로 간단히 답해 현장의 웃음을 자아냈다.
두 사람의 첫딸 출산 소식은 2012년 3월 8일 당시 바둑 전문매체와 언론에서 보도됐다. 다만 둘째 자녀의 자세한 생년월일이나 학교 등 사적인 정보는 공개 근거가 부족하므로 소개하지 않는다.
이창호는 주로 바둑과 관련한 인터뷰를 하는 선수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에 관한 짧은 대답에도 관심이 모인다. 하지만 아이들의 개인정보와 사생활은 기사의 재미를 위한 소재와 구분해야 한다.
검색어에 '이창호 부인'이나 '이창호 딸'이 함께 등장한다고 해서 가족의 현재 거주지, 학업, 얼굴 사진까지 공개된 정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확인되는 가족 관계만 정리하는 것이 독자에게도 더 정확한 답을 제공한다.








7. 11세 프로 입단, 조훈현 9단 문하에서 시작한 바둑

이창호는 어린 시절부터 두각을 드러냈고, 조훈현 9단의 문하에서 바둑을 배웠다. 1986년 8월 만 11세 1개월에 프로로 입단한 기록은 당시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1986년 8월 26일 승단대회에서 조영숙 초단을 상대로 거둔 승리는 프로 첫 승으로 공식 기록되어 있다.
오늘날에는 조훈현과 이창호를 나란히 한국 바둑의 전설로 떠올리지만, 처음에는 스승과 어린 제자의 관계였다. 이후 이창호의 실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두 사람이 정상급 기전에서 우승을 놓고 직접 맞붙는 상황이 펼쳐졌다.
스승을 넘어서야 하는 승부사의 처지는 특별하다. 바둑을 가르쳐 준 사람을 대국장에서는 경쟁자로 만나야 했기 때문이다. 이창호가 훗날 조훈현의 최다승 기록을 넘어선 사건 역시 오래된 사제 관계를 알아야 의미가 더 크게 다가온다.
그는 천재라는 말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장기적인 커리어를 보여준다. 재능이 어린 나이의 프로 입단을 가능하게 했다면, 40년 뒤의 2,000승은 그 재능을 오랜 습관과 반복적인 연구로 이어온 결과다.
8. 최연소 타이틀과 16세 세계 챔피언 기록
프로 입단 이후 이창호의 이름을 대중에게 널리 알린 사건은 어린 나이에 거둔 연속 우승이었다. 1989년 제8기 KBS바둑왕전에서 만 14세 1개월의 나이로 첫 타이틀을 획득했고, 1992년 제3기 동양증권배에서는 만 16세 6개월에 세계 챔피언이 됐다.
당시 한국 바둑의 경쟁 수준을 고려하면 어린 신예가 국내 타이틀을 거머쥐고 곧바로 국제 무대까지 제패한 것은 극적인 변화였다. 그는 이후 한두 차례의 돌풍에 그치지 않고 전성기 동안 국내외 정상권에서 오랫동안 활약했다.
한국기원 공식 프로필에는 왕위전 12연패, 1994년 최다 13관왕 기록, 세계대회 그랜드슬램 등 여러 성과가 정리돼 있다. 한 해에 여러 기전을 병행해야 하는 프로기사에게는 한 번의 우승도 쉽지 않다. 다관왕과 장기 연패는 강한 기량을 반복적으로 유지했음을 보여준다.
어린 시절의 천재성을 보려면 최초 우승 나이를, 정상권에서의 지속성을 이해하려면 타이틀 방어와 다관왕 기록을, 지금의 2000승을 평가하려면 40년에 걸친 통산 전적을 함께 봐야 한다.
9. 세계대회 우승 17회, 통산 142회 우승 의미

한국기원은 2026년 10월 이창호의 2000승 공식 발표에서 메이저 세계대회 우승 17회, 통산 우승 142회라는 기록을 함께 제시했다. 인터넷에서 세계대회 우승을 17회 또는 21회라고 표기하는 사례가 있는데, 메이저 대회만 계산하는지 다른 국제기전을 함께 포함하는지에 따라 집계 기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신 공식 발표의 수치를 그대로 소개한다면 '메이저 세계대회 17회'라고 표기하는 것이 가장 명확하다. 통산 우승 142회 역시 한국기원이 발표한 기준의 숫자로 제시해야 한다. 과거 선수 소개에 나오는 140회 등 오래된 숫자를 현재 기록으로 그대로 옮기면 차이가 발생한다.
| 성과 | 기록·의미 |
|---|---|
| 프로 입단 | 1986년 8월 |
| 최초 타이틀 | 1989년 KBS바둑왕전 |
| 첫 세계 챔피언 | 1992년 동양증권배 |
| 메이저 세계대회 | 우승 17회 |
| 통산 우승 | 142회(2026년 한국기원 발표 기준) |
| 세계 최초 기록 | 통산 2000승 달성 |
우승 횟수와 승수는 지표가 다르다. 대회를 제패한 성과는 특정 시기의 최정상 경쟁력을 드러내고, 통산 승수는 긴 시간 동안 얼마나 자주 출전해 상대를 이겼는지를 보여준다. 이창호가 두 종류의 기록에서 모두 역사적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10. 조훈현의 역대 최다승 넘어선 2025년 12월

2,000승보다 앞서 주목해야 할 이정표가 있다. 이창호는 2025년 12월 통산 1,969승을 거두며 스승 조훈현 9단의 종전 최다승 1,968승을 넘어섰다. 당시에는 '스승의 기록을 제자가 넘었다'는 상징성 때문에 바둑 팬들의 관심이 쏠렸다.
그 이전에도 1,000승, 1,500승, 1,900승 등 긴 경력의 주요 지점을 통과했다. 연합뉴스의 2026년 10월 보도에 따르면 통산 1,000승은 2000년 10월, 1,500승은 2010년 1월, 1,900승은 2024년 9월 달성했다.
이 흐름을 보면 승수 증가 속도가 항상 같지는 않았다. 전성기에 자주 출전하며 승리를 쌓던 시기와 이후의 활동 환경이 달랐기 때문이다. 2,000승은 단순히 1,999에 1을 더한 기록이 아니라, 승부에서 버티고 다시 도전해 온 축적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한편 2010년에 기록한 '2,000대국'은 출전 대국이 2,000번에 도달한 것을 의미한다. 당시의 2,000대국과 2026년 2,000승을 같은 사건으로 혼동하면 기록 연도부터 어긋난다는 점을 꼭 기억해 두자.
11. 돌부처 별명과 이창호 바둑 스타일의 특징
이창호의 대표적인 별명은 '돌부처'다. 대국 중 얼굴에 감정 변화가 잘 드러나지 않고, 상대가 어떤 수를 두더라도 침착함을 유지하는 모습에서 붙은 표현이다. 장기전에서도 성급하게 승부를 서두르지 않는 성향과 이미지가 잘 맞아떨어졌다.
그의 바둑을 설명하는 키워드로는 두터움, 안정적인 형세 판단, 뛰어난 끝내기가 자주 언급된다. 여기서 끝내기는 중후반에 남은 집을 정확하게 계산하고 손해 없이 마무리하는 과정이다. 초반에 화려한 공격을 펼치는 것만큼 작은 이득을 끝까지 쌓는 능력도 중요하다.
물론 이창호를 소극적인 방어 기사로만 이해하면 곤란하다. 상대가 빈틈을 보일 때는 강력한 수를 선택하고, 형세에 따라 전투와 안전한 운영 사이의 균형을 맞춘다. '돌부처'라는 별명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외적인 모습뿐 아니라 위험을 관리하는 승부 감각을 함축한다고 볼 수 있다.
이창호는 2026년 기자회견에서 바둑의 두터움이라는 생각에 대해서도 질문을 받았다. 그는 특정 기법보다 꾸준히 반복하는 공부가 결국 자기 무기가 된다는 메시지를 강조했다. 수십 년 승부 경험을 축적해 온 기사다운 설명이었다.
12. 가장 기억에 남는 대국, 응씨배 창하오 결승

11월 3일 기념식에서 이창호는 가장 뜻깊은 바둑으로 응씨배 결승에서 중국의 창하오 9단과 맞붙은 대국을 꼽았다. 이 결승은 세계 정상급 기사와의 승부라는 사실 외에도 개인적으로 오래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이창호의 대표적인 명승부를 하나로 압축하기는 어렵다. 스승 조훈현을 만난 국내 타이틀전, 세계대회에서 중국과 일본 정상급 기사를 상대했던 대국, 농심배 단체전에서 마지막 주자로 출전했던 승부 등이 각각 다른 의미를 갖는다.
반대로 아픈 패배도 있었다. 그는 유창혁, 이세돌, 최철한 등에게 중요한 무대에서 패한 기억을 언급했다. 특히 꼭 이기고 싶던 순간에 유창혁에게 졌던 경험을 떠올렸다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전설적인 기사도 패배의 고통을 오래 기억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런 답변은 2,000번 이긴 선수에게도 승부는 늘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시사한다. 단지 이긴 바둑만으로 커리어를 설명하지 않고, 아쉬운 패배까지 받아들이며 다음 판을 준비해 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13. 신진서 9단에 대한 평가와 바둑 세대교체

이창호는 2000승 기념식에서 신진서 9단을 자신의 후계자로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신진서가 이미 자신을 상당히 넘어섰다는 취지로 높이 평가했다. 현재 신진서의 기량과 성과를 인정하는 선배 기사의 발언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서로 다른 시대의 세계 최강을 단일한 숫자로 단순 비교하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기전의 수, 국제대회 개최 환경, 훈련 방식, 인공지능 활용 여부와 경쟁 선수층이 크게 달라졌다. 이창호가 1990년대에 세운 기록을 오늘의 경기 환경으로 기계적으로 환산하기는 어렵다.
이창호는 긴 시간 세계 무대에서 한국 바둑의 위상을 세웠고, 신진서는 새로운 세대의 경쟁 구도를 만들어 가고 있다. 두 선수의 활동 시기는 다르지만 한국 바둑을 대표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기록을 비교하는 것보다 각각의 시대에서 어떤 영향력을 발휘했는지 살펴보는 것이 더 알찬 접근이다.
이창호의 2,000승과 신진서의 현재 기량은 경쟁적인 평가보다 한국 바둑의 세대 간 연결을 보여주는 사례로 읽을 수도 있다. 실제 이창호 역시 후배의 성취를 기꺼이 인정했다.
14. 2500승 목표와 현역 은퇴 계획은?

2,000승을 달성한 뒤 가장 많이 나오는 질문은 '이창호 9단의 다음 목표가 2,500승이냐'는 것이다. 그는 11월 3일 기념식에서 후배들이 3,000승까지 응원했지만 그 숫자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보면서도, 2,500승에는 욕심을 내볼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말은 공식적으로 2,500승 달성 시점을 발표한 것과는 다르다. 2026년 11월 3일 보도에 따르면 그의 통산 승수는 2,001승이다. 2,500승에 도달하려면 여기서 499승을 더해야 한다. 대국 출전 수와 한 해 승수, 컨디션에 따라 소요 기간이 크게 달라지므로 달성 연도를 단정할 수 없다.
| 질문 | 2026년 11월 3일 기준 |
|---|---|
| 다음 관심 목표 | 2,500승을 해볼까 생각했다고 발언 |
| 3,000승 가능성 |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평가 |
| 최근 보도 전적 | 2,001승 1무 831패 |
| 2,500승까지 남은 승수 | 499승(해당 보도 전적 기준) |
| 은퇴 시점 | 정하지 않음 |
은퇴 계획 역시 확정된 것이 없다. 앞으로 5년이 될지 10년이 될지 15년이 될지 모르지만, 굳이 종료 시기를 정하지 않고 즐겁게 바둑을 두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장수 자체보다 즐길 수 있는 태도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15. AI 바둑 충격, 지금도 이어가는 공부·건강관리

이창호는 2026년 기자회견에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이 처음 등장했을 때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변화가 크다 보니 AI 분석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2~3년 정도 시간이 걸렸고, 기술적 도구를 다루는 데 익숙하지 않았던 점도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AI 이후 바둑은 프로기사의 공부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기존에는 사범과 동료 기사의 복기, 정석 연구, 기보 분석이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인공지능이 제시한 후보 수를 함께 검토하는 경우가 많다. 오랫동안 자신의 판단력으로 승부를 지탱했던 기사에게는 사고방식 자체를 조정해야 하는 도전이었을 것이다.
건강관리와 관련해 이창호는 격렬한 운동은 몸에 부담이 될 수 있어 스트레칭처럼 가벼운 운동을 거의 매일 한다고 답했다. 음식은 특별히 가리지 않지만 조금씩 먹는 편이라고도 말했다. 이 내용은 그의 개인적인 생활 습관 소개이지 특정한 건강 효과를 입증하는 의학적 처방은 아니다.
결국 40년 넘게 바둑판 앞에 앉기 위해서는 연구 능력뿐 아니라 변화에 적응하고 몸을 관리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2,000승은 이런 일상의 선택들이 오랜 시간 쌓인 결과로 읽힌다.
❓ 자주 묻는 질문 TOP 5

Q1. 이창호 9단 나이는 몇 살인가요?
1975년 7월 29일생으로 2026년 11월 3일 기준 만 51세입니다. 기사에 적힌 과거의 35세, 45세 등의 숫자는 보도 당시 나이이므로 현재 나이와 구분해야 합니다.
Q2. 이창호 9단 고향과 학력은 어떻게 되나요?
고향은 전북 전주이며, 전주교대부설초와 이대부속초를 거쳐 충암초등학교·충암중학교·충암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학교 이력은 본인 인터뷰에서 확인됩니다.
Q3. 이창호 9단 부인은 누구인가요?
배우자는 바둑 전문 기자 출신 이도윤 씨입니다. 두 사람은 2008년 취재를 계기로 만나 2010년 10월 28일 결혼했습니다.
Q4. 이창호 9단 2000승은 언제, 누구를 이기고 달성했나요?
2026년 10월 26일 전북 완주에서 열린 쏘팔코사놀 레전드리그 11라운드에서 최명훈 9단을 207수 흑 불계승으로 이기며 달성했습니다. 11월 3일은 이를 기념한 행사 날짜입니다.
Q5. 이창호 9단은 은퇴했나요? 2500승에 도전하나요?
2026년 11월 3일 현재 은퇴하지 않았습니다. 구체적인 은퇴 시점을 정하지 않았고, 2500승 도전에는 욕심을 내볼까 생각했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목표를 확정하거나 달성 연도를 발표한 것은 아닙니다.
🏁 결론|2000승을 넘어 계속되는 이창호의 바둑

이창호 9단의 핵심 프로필은 1975년생 전주 출신, 충암고 졸업, 부인 이도윤 씨와 2010년 결혼한 한국기원 소속 프로기사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2026년 10월 26일에는 세계 프로기사 최초로 통산 2000승이라는 새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11월 3일 열린 기념식은 그가 40년 넘게 쌓은 기록을 축하하는 자리였습니다. 11세 입단부터 세계 챔피언, 조훈현의 최다승 기록 경신, 2000승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시기의 성과를 하나로 연결하는 것은 결국 꾸준함입니다. 이창호는 은퇴 시점을 정하지 않았으며 좋아하는 바둑을 계속 즐기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앞으로 그의 통산 승수와 레전드리그 성적이 어떻게 바뀌는지 관심 있게 지켜볼 만합니다. 숫자 하나가 추가될 때마다 함께 늘어나는 것은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바둑판 앞에서 보낸 또 하루의 시간입니다.


